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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줌]중화성경회서 김산 만나 "독립"의기투합
관리자
조회수 : 3202   |   2006-08-14


운암 김성숙 항일운동 사적지 중국탐방-<4> "제1기 운암김성숙 항일운동 사적지 중국탐방단"(이하 탐방단)은 13일 탐방 마지막 일정으로 베이징에 도착. 김성숙이 김산(장지락)을 처음 만나 조국독립을 위해 의기투합했던 중화성경회(YMCA)옛터 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거점을 탐방했다. 베이징은 해외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으로 신채호 이회영 이시영 등이 활동했던 곳이자 군사통일주비회의 개최지, 의열단에서 세운 레닌주의 정치학교가 있었던 곳이며, 김성숙 김산 주문빈 등 사회주의자들의 활동거점이기도 했다. 베이징 지역 독립운동의 특징은 국제외교의 중심지였던 상하이와는 달리 다양한 계통의 노선과 이념을 추구하며 독립투쟁을 전개했다는 점이다. 1920년대 초 베이징의인사들은 의열단, 다물단, 무정부주의연맹, 혁명사 등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사상을 적극수용하면서 독립운동의 지평을 넓혀 나갔다. 1930년대에는 김산과 주문빈처럼 중국공산당에 참가해 항일전쟁을 전개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탐방단은 먼저 동청구 5.4대가에 위치한 북경대학 옛터를 방문했다. 이곳은 1952년 연경대학과 병합해 하이빈구로 이전하기 전까지 북경대학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는 베이징 신 문화운동기념관 베이징문물출판사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베이징 대학은 베이징으로 망명한 한국청년들의 지적보금자리 였으며, 중국신문화운동의 요람지였을 뿐아니라 한국 독립 운동지사들에게도 영향을 크게 미쳤던 곳이다. 동청루 동단베이대가가 있는 중화성경회(YMCA)옛터는 김성숙과 김산이 처음만나 의기투합했던 곳이다. 베이징고려기독교청년회 사무실이 있었던 곳으로 당시 건물그대로 현재 베이징시 기독교교무위원회와 베이징시 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가 사용하고 있다. 중화성경회는 1920년 겨울 이용설, 이대위, 문승찬, 장자일 등이 공리회 예배당에서 한인 기독청년과 학생들을 규합해 조직한 단체다. 탐방단은 이어 김산이 다녔던 왕부정거리 협화의원을 탐방한 뒤 유적지탐방을 모두 마쳤다. 탐방단은 또 이날 저녁 숙소인 요의빈관에서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만찬을 갖고 그들로부터 선대의힘겨웠던 삶과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의 삶 등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은뒤 장기자랑을 펼치며 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탐방단 조현래(고려대.26)군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지만 국가로 부터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까웠다"며 "좌파였다는 이유로 그 공훈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들의 명예가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탐방단은 13일 유적지 탐방을 모두 끝내고, 14일에는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정치외교학부)학생들과 "동북와의 두 과제, 평화와 환경-한중청년의 역할을 중심으로"란 주제로 토론회를 갖는다. 영어로 진행될 이날 토론회는 양국의 학생이 각각 2명씩, 모두 4명이 주제발표를 하게되며 질문과 토론이 이어진다. 이어 양국 학생들은 국제관계학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함께하며 준비한 선물을 서로 교환하는 등 우정을 나누게 된다. 오후에는 중국 최대의 포털사이트 SINA.COM을 견학한 뒤 8박 9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한다. <사진1.설명> 항일운동 사적지 중국탐방단원들이 12일 중국 충칭시 유중구 화평로 2항 5호~7호에 위치한 임히정부의 세번쟤 청사, 오사햐 청사앞에 설치된 표지석을 보고 있다. 당시 전형적인 2층 목조가옥으로 70여칸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원형이 거의 훼손돼 있으며, 문앞 지하로 내려가는 돌계단에 중국 정부가 만든 비석이 세워져 있을 뿐이다. <사진2. 설명> "제1기 운암 김성숙 항일운동 사적지 중국 탐방단" 대학생 50명이 중국 충칭시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를 배경으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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