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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독립운동가] 채원개 선생
관리자
조회수 : 1362   |   2020-09-01


생몰연도 : 1895. 02. 24 ~ 1974. 02. 16

 

 

훈     격 : 건국훈장 독립장 (1968)

 

 

주요공적

 

 

    ▷1934년 한국독립당에 입당, 광동지부 간부로 활동

    ▷1940년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처장

    ▷1944년 광복군 제 1지대장에 취임

 

공적상세

 

    중국 곳곳에서 독립전쟁을 치르며 항일 자취를 남긴 광복군 지휘관

 

 

   선생은 21세에 군사학을 배우기 위해 조선보병대에 입대하여 4년간 복무, 1919년 고향에서

   3·1 만세운동을 주도

 

 

  이후 북만주로 이동하는 중에 유하현 삼원포에서 대한독립단 총단장인 조맹선을 만나

  대한독립단 군사교관으로 활동

 

 

  1921년 통의부 대표로 김창환·심용준·김이대 등과 함께 상해로 파견되어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하였고, 이후 상해에서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

 

 

  19236월 낙양군관학교 기병과에 입학하여 중국 군벌의 내전에 참여하여 실전 경험을

  쌓았으며, 1925년 봄 대한민국임시정부 육군 주만 참의부 군무부장에 임명되어 참의부와

  정의부 간 조정 임무를 띤 임시정부 대표 자격으로 만주지역에 파견

 

 

  1927년에는 황포군관학교 교관으로서 독립군 양성, 이듬해 봄 제2사 교도단장 등으로

  공산당 토벌작전 등에 참가, 1932년 상해사변을 계기로 일본의 대륙 침공이 본격화된 이후

  중국군 독립 제4사 참모장으로 근무

 

 

  1934년에는 광동 주재 중국군에 복무하면서도 한국독립당 광동지부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 이후 광주에서 중국군으로 재직시 동산백원을 임시정부의 임시청사로 제공하고 아세아

  여관을 임시정부 요인 및 가족들의 숙소로 이용하는 데 기여

 

 

  1940년 광복군에 합류하여 참모처장, 1943년 총무처장, 1944년에는 광복군 제1지대장에

  임명, 1945815일 광복 이후 광복군 제1지대를 이끌고 남경에 도착하였으나, 당시

  미군정이 광복군의 입국을 거절하고, 개인 자격으로 입국만을 허락하여 부대를 해체하고

  1946년 상해에서 선편으로 귀국

 

 

  귀국 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3주간 훈련을 마친 뒤 제3연대 작전참모로 부임한 이후

  제3여단장, 2사단장을 역임, 1949년 준장으로 예편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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