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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백선엽은 조작된 영웅" 참전군인이 말한다
관리자
조회수 : 1192   |   2020-07-20


“백선엽은 조작된 전쟁영웅입니다.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박경석(88) 예비역 준장은 단호했다. 육사생도 2기 출신으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야전을

두루 거친 노병인 그는 백선엽씨가 전쟁영웅이 아니라고 했다.


19일 오전 대전 유성 자택에서 만난 박 장군은 “백선엽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자격이 없다.


백선엽 가족은 그의 주검을 가족묘지로 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백선엽이 일본군 장교로 간도

특설대에 근무하며 항일독립투사를 체포하는 등 친일 반민족 행위를 했고, 여기에 더해 한국전쟁사

를 왜곡해 스스로를 영웅으로 만든 위선자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백선엽은 한국전쟁 발발 당시 제1사단장이었으니 공적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법적으로도 장군은 국립묘지 안장 대상이죠. 그런데 그의 행적을 보면 장군의 명예를 누릴 자격이 없어요.”


그는 “백 장군이 예편 뒤 자청해 30여년 동안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자신과

채병덕 총참모장 등 일본군 출신 군인들 중심으로 한국전쟁사를 미화했다”며 그 예로 백씨를 전쟁영웅으로

만든 낙동강 전선 다부동 전투를 들었다.


다부동 전투에서 백선엽의 제1사단은 적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328고지~수암산~

유학산~741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해 대구 고수에 결정적으로 기여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낙동강 전선은 월턴 워커 중장이 한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 등 8개 사단을 지휘해

워커 라인으로 불렸다.


백선엽의 제1사단은 8개 사단 가운데 하나였는데 공적이 부풀려졌다”고 했다. 일부를 전체로 과장했다는

얘기다.



또 개전 초기 전투 상황도 왜곡됐다고 했다. 제1사단은 개성에 주둔했는데 북한군은 개전 5시간 만에

개성을 점령하고 남하했다.


당시 백선엽은 경기도 시흥 보병학교에서 교육받다가 참모의 연락을 받고 즉시 귀대해 부대를 지휘했으나

전차 등 장비에 밀려 후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설명은 다르다.


6월24일은 육군구락부(현 육군회관) 준공 기념 파티가 열린 날로, 춘천방어작전을 성공적으로 펼친 제6사단장

김종오 대령을 포함해 전방 사단장은 모두 참석했다는 것이다.


그는 “백선엽은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임진강 남쪽에서 후퇴하던 사단에 합류했다.


그도 사단장으로서 당연히 이 파티에 참석했을 것”이라며 “부대를 비운 이유로 든 교육은 의무가 아니라 출석을

임의로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전쟁이 벌어지는 순간, 술판을 벌이고 있어 남침에 곧바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개전 과정에서 북한군의 전차를 몸으로 막고 산화한 것으로 알려진 ‘제1사단 육탄 10용사’는 뒷날 10용사 가운데

몇몇이 북한방송에 출연해 ‘조작’임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사건 외에 제6사단의 ‘심일 소령과 육탄 5용사’도 조작 무용담이죠. 모두 일제 강점기에 조작된 ‘일본군

육탄 3용사’를 베끼기 해 지휘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수단이었어요.”


그는 “백선엽은 후퇴를 참 잘하는 사단장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여서 ‘내가 등을 보이면 총을 쏘라’며 진두에

서서 전투를 지휘했다는 미담 역시 사실이 아닐 것이다.

백선엽은 미군 군사고문단을 극진히 대접해 맺은 인연을 배경으로 승승장구했다는 게 정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백선엽 명예원수(5성 장군) 추대를 막아냈다.


자신이 평생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일제 앞잡이였던 백씨가 한국군 최초의 명예원수가 될 순 없다’고 앞장서

반대했다. 채명신, 박정인, 이대용 장군 등 참전 군 원로들도 그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 결국 무산됐다.




진짜 한국전쟁의 영웅은 누구일까? 그는 주저하지 않고 1984년 국방부와 육군본부가 선정한 4대 영웅인

김홍일 장군, 김종오 장군,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워커 장군이라고 밝혔다.


김홍일 장군은 개전 초기 국군 패잔병을 모아 한강방어선을 구축해 3일을 버텼고, 김종오 장군(당시 대령)은

제6사단장으로 3일 동안 춘천을 방어하며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해 미군이 참전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


맥아더 장군은 유엔군 사령관으로 전황을 뒤집는 인천상륙작전 등을 이끌었고 워커 장군은 낙동강을 사수했다.


당시 정부는 김홍일, 김종오 장군의 일대기를 펴내고 맥아더와 워커 장군의 다큐멘터리도 제작해 방송했다.


“나는 강재구 당시 대위가 참 군인 정신을 지킨 재구대대의 첫 대대장입니다. 영원한 재구대대장으로서 전사를

왜곡해 진짜를 밀어내고 영웅이 된 가짜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보수 세력들이 주장하는 백선엽이 간도특설대

시절 반공 투사였다는 것도 거짓입니다. 800명 단위의 간도특설대는 중국 팔로군과 전투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닙니다. 전투부대가 아니라 공작부대로 봐야 합니다.”


강재구 대위는 1965년 10월4일 월남 파병을 앞두고 수류탄 투척 훈련 중 부대원이 실수로 떨어뜨린 수류탄에

몸을 던져 부대원의 생명을 구하고 본인은 장렬히 산화한 인물이다. 순직 후 1계급 특진이 이뤄졌다.


그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친일·반민족 주의자 문제는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가 반민족행위자를 조사했잖아요? 그 결과에 따라 처리하면 되는 겁니다. 나쁜 짓 했으면 사후라도 그 죗값을

물어야죠.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여생을 왜곡된 군사를 바로 잡는데 바치겠습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사진 이은덕 사진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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